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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부정공>상호정중수기(相好亭重修記)
相好亭重修記 故察訪趙公構小亭於小溪之上憑欄遐囑則遠挹毋岳平臨祖湖山川明媚景像森羅雲烟竹樹一望無際華扁美額何所不可而獨能拈出斯干詩之語以相好揭號吁其義盖可想矣公以簪纓望族奕世冠冕居有公侯之富坐享湖山之勝人間之樂無一不足尤可幸者孔懷兄弟四箇無故接屋連墻昕夕相對融融然和樂切切焉親愛大衾長枕姜肱之友愛彌篤同衣同食司馬之婦言不入至於春花秋月夏雨冬雪兄呼弟隨尊登亭絲竹鏗轟觥籌交錯四時之景致不同一氣之至樂無窮紫荊發花義竹成陰同根連枝之樂花竹猶然而况於人乎回視世間爭田爭財骨肉之詞訟盈庭紾兄奪食反目之睢旺可怕間或有知所親愛而不報則輟顧瞻斯亭寧不恧怩所以舍江山風月而獨取斯義一以名亭一以遺後孫此不猶愈於滿籝之金乎是以子孫繩繩世守而勿失于今五世遺澤不渴良辰美景少長咸集把酒臨風想當時之敦睦怡愉箴警戒今玆之或墜斯亭也非特爲當時湛樂之所實萬世子孫之楷範也嗚呼 國運不幸兵塵忽起名亭巨室盡灰於敵人之一炬而惟此一亭巍然獨存意者天惜名義神慳鬼護使不得歸於磨滅之地乎其五世孫上舍暻易其榱改其瓦補其窓壁一新舊制肯構肯堂非獨追遠之有誠具亦有光於祖先者大矣余以外褒屢登斯亭壁間嘗有安相公子珍之詩曹梅溪太虛之記皆所以發揮名亭之義而其他板上題詠盡是當世名公銀鉤玉屑璀璨樑楣今皆失亡有識咸嗟上舍君能誦得若干詩改刊於板囑余爲記葭孚末屬雖有續貂之譏情既切請又勤不可以文拙辭姑記顚末以俟後之能言者 興德 張經世 記 상호정중수기(相好亭重修記) 고찰방조공(故察訪趙公)이 자그마한 정자를 작은 시내 위에 지었다. 난간을 의지하여 멀리 바라보면 멀리서 모악산(母岳山)이 다가오는 듯 가까이는 평평한 조호(祖湖)에 맞닿는 듯 하여 산천이 밝고 고우며 경상(景像)이 빽빽이 벌려 구름 연기와 대나무가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꽃다운 현판과 아름다운 액자를 하는 데 있어 어느 것이 불가하기에 유독 사간시(斯干詩)의 말을 따서 상호(相好)란 액호를 걸었단 말인가. 아! 그 뜻을 대개 가히 짐작하겠도다. 공은 대대로 벼슬을 해온 망족으로 여러 대에 거쳐 많은 훈작(勳爵)을 받았으니 거향(居鄉)에 공후지부(公侯之富)가 있고 앉은 곳에 호산(湖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누리고 있으니 인간의 즐거움에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더욱이 다행한 것은 심히 생각한 형제 四인이 무고하고 집이 잇닿고 담을 연하여 조석으로 서로 대하며 부드럽고 순한 화락과 정성으로 친애하여 큰 이불과 긴 베개는 강굉(姜肱)의 우애보다 더욱 독실하였고 함께 옷 입고 함께 먹는 것은 사마(司馬)의 지어미 말이 듣지 못하였다. 꽃피는 봄과 달 밝은 가을이며 비 오는 여름과 눈 내리는 겨울에 형이 부르면 아우는 따라 한 두루미 술을 들고 정에 올라 가벼운 음악으로 술잔을 어울리곤 한다. 그리하여 시의 경치는 같지 아니하나 한 기운의 지극한 즐거움은 다함이 없도다. 자형(紫荊樹)은 어울려 꽃을 피우고 의죽(義竹)도 서로 그늘을 이룬다. 뿌리를 같이하고 가지를 연한 즐거움은 꽃과 대도 누리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세상 사람들 하는 모양을 보면 전답과 재물을 다투어 골육(骨肉)의 송사가 관정(官庭)에 차고 형을 밀치고 밥을 뺏고 눈을 흘기고 소원한 거동은 정말 두려울 지경이다. 간혹 잘 아는 친애(親愛)한 사람에게 제대로 보답하지 않으면 서로 사이가 벌어지곤 하는데 이 정자를 돌아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강산풍월을 놔두고 다만 이 뜻을 취한 것은 한편으로는 정자를 이름하기 위해서이고 한편으로는 후손에게 물려주려 한 것이니 이것이 상자에 가득한 금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이로써 많은 자손이 잊어버리지 않고 대대로 지켜와 지금 五세에 이르도록 물려준 은택이 마르지 않고 있다. 좋은 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면 늙은이 젊은이가 모두 모여 술잔을 잡고 바람을 쏘이며 당시의 돈목했던 모습을 상상하여 화열한 훈계의 말씀을 오늘날 혹 떨어뜨릴까 경계하니 이 정자는 특히 당시에 담락하던 곳일 뿐만 아니라 실로 만세 자손의 규범이라 하겠다. 아!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병진(兵塵)이 문득 일어나 이름난 정자와 큰 집이 다 도적의 한 횃불에 재가 되었는데 오직 이 정자만은 높다랗게 홀로 보존되었으니 생각하건대 하늘이 명의를 가상히 여기시니 신이 아끼고 귀신이 보호하여 갈아 없어질 땅에 돌아가지 않게 한 것이 아닌가. 그 五세손 진사(進士) 경(璟)이 그 기둥을 바꾸고 기와를 고치며 창과 벽을 보수하여 옛 제도를 새롭게 하여 선덕을 이으니 추원(追遠)의 정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조선(祖先)에 광택이 크다 하겠다. 내가 외예(外裔)로써 자주 이 정자에 올라 벽 사이에 일찍이 상공한 자진(相公安子珍)의 시(詩)와 조매계(曹梅溪)가 쓴 기를 보았는데 다 이름난 정자의 뜻을 발휘하고 기타 현판에 새긴 시가 다 그 당시 명공(名公)의 은갈구리 옥가루로 들보아 문중방에 옥빛같이 찬란하였는데 이제 그런 것이 없어지고 보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슬퍼하였다. 상사군이 능히 약간 시를 외워 현판에 고쳐 새기고 나에게 기를 부탁하니 먼 인척 말속(末屬)이 쓸 만한 사람이 못 되지만 뜻이 이미 간절하고 청이 또 근실하여 기가 졸문으로 사절하지 못하고 아직 전말을 기록하여 후세의 말에 능한 자를 기다리노라. 興德 張經世 삼가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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